3.1. 한 때 아시아(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시리즈가 있었다.
가끔 한국시리즈, 일본시리즈, 그리고 미국의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왜 미국은 자국의 리그 챔피언을 가리는데 '월드 시리즈'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본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저 화려하고 멋지게만 '월드시리즈'를 바라보던 본인 또한 어느샌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월드시리즈'라는 타이틀에 대한 불편함, 언짢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 등의 아시아 권에 있는 프로팀의 수준 차이가 얼마나 날까, 실제로 붙어보면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팬들의 이러한 궁금증도 있었겠지만 한국의 KBO, 일본의 NPB, 대만의 CPBL, 중국의 CBA, 호주의 ABF가 의기투합혀여 Asia Series를 출범시켰는데 이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의 역사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아쉬움속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짧다면 짧은 역사였고 이 아시아 시리즈는 05년부터 07년까지는 일본 코나미社가 타이틀 스폰서가 되어 '코나미컵'이라는 타이틀로 일본 도쿄돔에서, 이후 08년부터 13년사이(09, 10년에는 중단)에는 '아시아 시리즈' 도쿄, 타이중, 부산, 타이중 순으로 개최지역에 변화가 있었다.
중국은 (국가대표팀으로 봐야하겠지만)올스타팀, 한국-일본-대만-호주는 해당 년도 우승팀이 출전하는 형식이기에 아시아 챔피언십 시리즈라고 봐도 무방했던 시리즈였다. 대부분의 우승은 일본 프로팀이 가져갔고, 우리나라에서는 SK 와이번스가 아쉽게 준우승 1회,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 1회, 준우승 1회의 성적을 거두었다. 일본이 5회 우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매해 우승팀이 달라서 2회 이상 우승한 '절대강자(?)'는 없었다. 2009년부터 2년간 시리즈가 중단된 것을 보더라도 이 시리즈는 흥행을 하지 못했고 초기 3년동안 타이틀 스폰서를 했던 코나미가 스폰서십에서 철수 한 이후 적극적으로 스폰서십에 나서는 기업은 없었던 것 같다.
각 리그 챔피언끼리의 격돌이었지만 각 리그의 침피언십에서 전력을 쏟아부었던 팀이 이벤트성 게임으로 흘러갔던,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기들은 야구팬들에게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기분마저 주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한일간 경기는 꽤 살벌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작은 범위로 본다면 초기 움직임으로 한국과 일본의 올스타 팀이 경합하는 한일 수퍼게임이 앞서기는 했다.
3.2. 한-일 슈퍼게임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명포수 후루타 아쓰야의 레이저 송구를 뚫고 2루를 훔치고, 국보 선동렬이 일본의 올스타 팀을 상대로 5연속 탈삼진을 잡아내고 리그 대표 거포였던 장종훈이 장외홈런을 때려내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일본에 지면 안된다는 '정신력'이 매우 강하게 작동되던 그 시기였고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전력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경기들이기도 했다.
한-일 슈퍼게임은 1991년부터 4년 간격으로 1999년까지 세 차례 열렸는데 이는 기존부터 계속 되어왔던 미-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모방한 경기였다고 한다. 모두 일본에서 열렸고 기존 미-일 올스타전을 스폰서했던 요미우리 신문의 흥행 케이스를 보고 이에 대항하여 라이벌 '주니치'신문이 한-일 슈퍼게임을 스폰서했다고 한다.
이 경기를 통해서 한국 올스타 선수들은 좀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일본 도쿄돔에서의 실내 경기, 일본 투수들의 정교한 제구와 변화구 그리고 그중에서도 포크볼 등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첫 수퍼게임에서 2승4패로 열세로 끝났던 것이 무척 분하고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수퍼게임 시작 전 1승도 어렵다고 했던 평가들이 주를 이뤘던 것을 넘어서서 우리나라 수퍼스타들이 대등한 경기를 하고 2승을 이뤘다는게 멋지기도 했다. 이러한 한-일간의 교류를 통해서 KBO의 수퍼스타들은 한단계 도약을 이뤄낼 수 있었고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구대성 등 한국의 슈퍼스타들은 대한해협을 건너 '주니치 드래건즈'로,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진출 할 수 있었다.(그리고 '삼손' 이상훈 선수는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바탕으로 꿈에 그리던 MLB의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했다. 본래 KBO에서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갈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지만 계약 후, 절차에 대해 문제삼은 타 구단들의 목소리때문에 한-미 포스팅 제도가 생겨났고 공개 입찰(?)에서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은 후, 미국 진출이 무산되었다가 NPB에서의 퍼포먼스로 재검증(?)을 받은 후 마침내 MLB에 입성할 수 있었던 과정은 한국프로야구가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평가절하당한 측면이 있지 않았나 하는 주관적인 생각에 많은 아쉬움이 있던 과정이었다.)
일본의 '선진화'된 야구가 없었다면 우리가 성장할 수 없었다는 얘기를 주 요소로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선수들이 일본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장이 있었고, 이를 통해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프로야구가 아닌 바다 건너 리그에서 활약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의 Top-Level 선수들을 예의주시했고 이들을 거액의 계약금으로 스카우트했고 중계권을 한국에 판매했고 한국의 야구팬들은 일본 NPB를 보게 되었다.
한-일 슈퍼게임은 단순한 양국의 올스타 교류 경기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비즈니스가 창출되었다.
생각해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그들의 시각에서는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한국의 프로선수들을 불러들여 경기를 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교류하기를 원했고 그들 나름대로의 Risk가 있었겠지만 큰 금액을 들여 선수를 스카우트했다. 특정 나라, 특정 리그에 대한 하대보다 '객관적인 시각', '비즈니스적인 시각'이 우리에게도 좀 더 필요하지 않나라는 관점에서 되짚어볼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3.3. 아시아 야구 리그에 대한 기존의 움직임
아시아 리그 창설에 대한 내용은 새삼스런 내용은 아니다. 이미 이전부터 언급이 많이 되었던 내용이다. 한국야구의 '전설'이자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성근 감독이 일본의 전설이자 세계적인 홈런타자인 왕정치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의 요청으로 코치를 코치하는 역할로 소프트뱅크에 합류했을 때에도 왕 회장과 아시아 리그에 대한 논의를 많이 나누었다고 하는 내용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풍부한 자금과 강력한 실행력을 갖추며 2000년대의 강자로 군림하면서도 3군 시스템 제도 도입 등의 야구단 시스템의 혁신을 도모하는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것이라면 (혼자서만 할 수는 없는 것이 리그, 그것도 아시아 리그이겠지만) 새로운 리그의 창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3.4. 현실적인 어려움과 해결 방안의 모색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현실적 난제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인 것같다.
흥행성과 스폰서십, 축구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와는 달리 각 국가 리그별로 봄에서 가을까지 기본 100경기 이상 편성되어 운영되는 페넌트레이스 사이에서 어떻게 아시아 리그를 운영할 것인가, 그리고 우기에 해당하는 시점에 경기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확보되어 있는지 등이 언뜻 생각해보아도 풀어야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첫번째 흥행성과 스폰서십의 경우는 기존 '아시아 시리즈'와 같이 흥행 이슈로,이에 따른 스폰서십에 대한 이슈로 리그 운영의 지속성에 대해 걱정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존 '아시아 시리즈'의 경우 단기간 치러지기도 했지만 특정 국가에서만 대회가 치러졌다는 것도 저조한 흥행의 원인이 아닐까.
축구와 직접적인 비교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예선 리그 전만 하더라도 홈, 어웨이 경기를 통해 양쪽 국가의 팀 팬들이 홈 경기에서 응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티켓 판매를 동반한 수익성도 향상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두번째로 각 국가별 리그 진행 중인 상황에서 누가 참가할 것인지, 언제 경기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는 문제가 될 것같다. 이 역시 축구를 생각해본다면 전년도 성적을 기준으로 각 리그별 (모든 팀이 참가할 수도 있겠지만) 상위 몇 개팀을 제한하고 각 리그의 경기 수를 일부 축소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시아권에서 프로야구리그를 운영 중안 대표 3국의 경기수를 보자면 한국의 경우 144, 일본의 경우 143, 대만의 경우 120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겠지만 총 경기수를 120 정도로 산정한다고 본다면 대략적인 계산 상으로만 본다면 팀당 약20경기 정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2023년도 12월에 대만 타이베이에 새로운 돔구장이 개장함으로서 최소 위 세 국가는 최소 하나의 돔구장은 보유하고 있으므로 우기에도 경기 진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축구와는 달리 야구를 하는 나라가 적다는 것이 아시아 리그의 범위에 제한을 둘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동에서도 Baseball United 리그가 출범되었고 이 리그는 UAE, 인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4개국이 참여하는 리그이다. 4개의 팀으로 2025년 10월부터 리그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UAE의 주도로 메이저리그 레전드 출신들을 운영진 및 선수로 영입했을 뿐만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 일본 NPB, 여러 나라의 독립리그 등 리그 출신 가릴 것없이 선수들을 영입했다. 정식으로 시작하지 않은 리그 수준을 평가하기에는 섣부르지만 각 팀별로 선수들을 골고루 포진시켰고 크리켓이 절대적인 국민 스포츠인 인도와 파키스탄에도 각각 하나씩 팀을 구성하여 또 다른 국민 스포츠로 흥행을 촉진시키겠다는 목적도 있는듯하다. 중국도 2019년부터 CNBL이라는 명칭과 함께 4개팀으로 프로리그를 출범했다. (코로나 기간동안 중단되었다가 2023년부터 리그가 재개되었다고 한다.) 이를 생각해본다면 초기 아시아 리그에 포함될 수 있는 범위로서는 작지는 않게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분은 이 리그를 어느 조직, 어느 기관에서 주도할 것인가 하는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축구와 동일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기존의 BFA(아시아 야구 연맹)의 주도 형식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각 국가 리그간 합의를 통해 리그 조직을 구성해 주도해 갈 것이냐 하는 부분은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시아 시리즈가 실패했던 이유는 스폰서에 의존성이 너무 컸던 것과 합의를 했다고는 하지만 주도권을 일본 NPB 조직에서 가져가려다가 실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주관적인 추측을 해본다. 아시아 야구 리그를 아시아 대륙에 전파하고 리그가 견고하게 지속성을 가지게 되고 흥행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 특정 그룹의 이익이 최우선이 된다면, 투자효율성 측면에 주된 초점을 맞춘다면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견해이다. 그래서 연합체로서 리그 구성단체를 만드는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시아리그에 대한 아이디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주관적인 견해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인 접근에 있어서는 아주 많은 난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복잡한 실타래를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 중일 수 있겠지만) 하나씩 풀어나가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미국과 캐나다 팀끼리의 '월드시리즈'가 아닌, 진정한 '월드시리즈'가 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그 때에도 글러브 없이, 방망이 없이 테니스공과 맨손으로 '주먹야구'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베이스볼5라는 명칭으로 세계화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도 세계화를 꿈꾸고 도전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