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가 시작된 1982년 시즌 이후, 1983년부터 해외교포 선수 제도를 통해 NPB(일본프로야구) 출신의 선수들이 각 팀별로 할당되었는데 이는 한국프로야구의 태동에 큰 역할을 한 장훈씨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이 장훈씨의 노력과 중재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에이스였던 김일융,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장명부 등의 재일교포 선수들이 팀의 주축으로 뛰며 초창기 한국프로야구의 수준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그리나 1995년부터 교포선수의 팀당 보유 제한을 두면서, KBO의 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교포 선수들이 한국에 오는 일이 드물어지게 되었다.
1.2. 외국인선수 제도의 시작
1998년 시즌부터 팀당 최대 2명까지 외국인선수를 보유할 수 있었는데 구단 운영에 '효율화'를 추구했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0명, 해태 타이거즈는 1명을 고용했다. 2001년 시즌부터는 최대 3명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개정이 되었고 대부분 2명은 투수, 1명은 타자를 영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대체적으로 미국, 중남미 국가 출신 선수 순으로 선호도가 높았다. 아시안으로서는 일본, 미국(시카고 화이트 삭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경험)을 거쳐 히어로즈에서 잠시 뛰었던 다나카 신고, NPB에서 선발투수로 준수한 활약을 하다가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카도쿠라 켄, 미국에서 프로 데뷔하여 MILB와 MLB를 이동하다가 NC 다이노스에서 풀타임 선발로 뛰었던 왕웨이중이 대표적인 선수였다.
1.3. 육성형 외국인 제도 및 아시안쿼터의 시작
2021년 가을 KBO 이사회를 통해서 육성형 외국인 선수 제도를 신설하여 2023년도부터 투수와 야수를 1명씩 최대 연봉 30만 달러를 제한으로 둘 수 있다는 것인데 각 팀은 육성형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다.
이 제도의 실행의 최대 목적은 1군 등록 외국인 선수의 급격한 기량하락 혹은 부상 발생시 빠르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2024년 SSG 랜더스와 두산 베어스에서 단기 외국인 선수로 활약한 시라카와 케이쇼 선수 이후 2025년 준비기간을 가진 후 2026년부터 시행 예정인데, 그 조건은
- 연봉 총액은 20만 달러
- 기존 외국인 선수 제한과 별도로 하며 직전(혹은 해당년도) 아시아리그 소속 선수이면서 아시아 혹은 호주 국적 선수라고 한다.
1.4. 아시아쿼터의 범위 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 독립리그 출신의 시라카와 케이쇼 선수의 등장 이후 각 팀들은, 그리고 팬들은 일본 독립리그 출신도 KBO에서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진 것같다. 그러나 아시안쿼터가 가동되면 일본, 대만 출신보다는 호주 국적의 선수들을 스카우트 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발생하고 있다. 월드컵 예선으로 생각해본다면 호주도 아시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FIFA가 정한 기준이 맞느냐 하는건 별개의 문제아닌가 한다.
호주를 포함하는 것이 진정한 아시아쿼터인가? 단지 외국인 용병 슬롯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과 다를게 무엇인지? 아시아쿼터는 왜 탄생했나에 대해 의문점을 가져본다.
개인적인 의견이기는 하지만 아시아쿼터가 잘 사용된다면 시장의 확장도 가능하리라 생각해본다. 물론 일본 NPB 혹은 독립리그 출신이 영입된다고 일본까지 영향력이 급격하게 확산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 대만으로는 영향력이 끼칠 수 있지 않을까.
1.5. 한국과 일본의 시각 차이와 시장의 확장
육성형 용병, 아시아 쿼터에 대한 한국의 접근은 비전문가인 개인이 보기엔 '즉시전력감'이 최우선 사항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은 재능있는 아마추어 선수를 미리 스카우트 후 2,3군에서 '키우고' 1군에서 데뷔 후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데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보' 선동열 감독이 주니치 드래곤즈로 진출하기 전부터 주니치의 간판타자로 활약했던 다이호,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슈밍치에, 야구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닛폰햄 파이터즈 지명 후 FA로 일본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및 활약한 양다이강,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데뷔하여 미국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이애미 말린스를 거치면서 FA로 4년간 8천만달러라는 빅딜까지 성사했던 천웨인 등 많은 선수들이 있다. 이들의 일본 진출 후, 대만의 야구 팬들은 일본에서 활약하는 자국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일본으로 야구여행을 오가고, 기존에도 긍정적이었던 대만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여전히 높다. 대만 프로 리그인 CPBL의 4할 타자 왕보룽 선수가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 후에는 일본 퍼시픽리그에 대한 중계권을 FOX Sports Taiwan이 계약하며 NPB는 중계권료 수익도 얻을 수 있었다. 일본은 80년대 아니 그 이전부터 자국 선수 뿐 아니라 외국 선수, 그중에서도 아시아권 선수 스카우트에 정성을 쏟았다. 한국에 프로야구가 태동하기도 훨씬 전에 경동고등학생 신분이던 백인천 감독을 도에이 플라이어즈에서 스카우트했고 1975년 백인천 감독은 타격왕을 거머쥐며 팀에 공헌했다.
즉시전력보다도 단지 선수 자체의 잠재력을 보고 스카우트했었고 지금도 그런 기조가 이어져오고 있는 것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만 선수의 영입을 타진한 적이 있다고 한다. 2010년 SK 와이번스에서 판웨이룬을, 2015년 모 팀에서 린즈셩(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박찬호 선수에게 홈런을 뽑아낸 선수) 영입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CPBL의 행정도 문제여서 무산되기는 했지만 행정적인 부분에서 KBO와 CPBL이 교류하면서 서로의 진입장벽을 낮추었다면, 대만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선수, 대형선수로 성장이 예상되는 선수가 한국에도 진출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프로 스포츠는 순위, 성적이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가 태동할 때 '어린이에게는 꿈을, 젊은이에게 정열을, 온 국민에게는 건강한 여가선용을'이라는 슬로건을 가졌던 것을 생각해볼 때 어린이와 젊은이 그리고 국민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더 넓은 영역으로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면 한국도 넓은 시장을 지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 천만 관중 돌파도 좋지만 더 많은 국가에서 한국프로야구의 시청자가 생겨나고 비즈니스가 발생하고 팬이 생겨난다면 더 좋지 않을까? MLB가 추구하는 '세계화'를 '한국 야구'는 할 수 없을까.
그렇게 된다면 대그룹 계열사 중 돈 먹는 하마로 여겨지는 조직에서 흑자 구조를 만들어내는 팀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프로야구 팀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회사로서 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