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팀장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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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팀장이 되다

 
 
2020.05.01 노동절. 전 세계의 노동자들의 날인 노동절. 어렸을 때에는 아저씨들이 시내에서 시위하고 신문에 나오는, 전투적인 날이라고 생각되었던 날. 김부사장님의 제안으로 타이페이 인근의 라오메이 해변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오랫만에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은 갈치의 비늘이 빛에 반사되어서 반짝이는 것처럼 바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한동안 먼 바다를 바라보다가 찰싹거리는 파도소리를 따라 고개를 속여 아래를 보니 바닷바위들이 파도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번도 같은 모양이 없는 파도. 매번 새로운 파도 물결이 바닷바위를 향해 오는데 바위는 그냥 그 자리에서 수 많은 파도물결을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히 작은 바닷바위를 바라보고 있는데 머릿속에 작은 울림이 울리는 것같았다. 
 
부사장님도 리더로서 갖는 어려움이 있었다. 정도의 차이가 물론 있지만 내가 겼었던 어려움과 결을 같이 하는 부분들이 있어 한편으로는 외로운 어려움이 아니구라 라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어려움은 외국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한번 들었다.
 
나는 내가 리더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직이 원하고 상황이 그렇다면 내가 피할 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록 리더로서 부족한 면은 있지만 점차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프로야구기사를 보다보면 시즌 중이든 스토브리그이든 예상치 못한 감독경질 및 선임기사를 보게 된다. 때로는 최연소 타이틀을 가지는 감독도 있고 코치 경험없이 바로 감독에 발탁되는 경우도 있다. 그 기사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한국에 10개 밖에 없는 자리이고 야구판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가 감독의 자리이지만 감독이 일찍 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물론 항상 감독이 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안이 온다면 나같이도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이겠지. 하지만 감독으로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단순한 리더로서의 철학 조차도 없는 사람이라면 롱런하기 어려운 것같다.
 
대만에 와서 약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실장남과 부사장님은 나에게 팀을 맡아줄 것을 제안해주셨다. 업무 문화도 다르고 서로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도 통역이 없으면 원활하게 진행하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내가 준비되어있지 않다라는, 자신이 없어서 고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올 때 어느 정도 나에 대해 그 부분의 기대감을 가지고 채용을 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는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받아들이게 되었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리더로서 생각하는 이상향이 있었다. 말로 지시만 하고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업무의 오너십이라는 말로 팀원에게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전가하고, 잘 되면 공을 가로채는 리더는 되지 말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했던 것은 다음과 같다.
  1. 서번트 리더십을 보여주자. 업무지시를 하지만 같이 고민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케어해주고 내가 먼저 본(sample)이 되자.내가 하기 싫은 것을 팀원에게 지시하지 말자.
  2. 그리고 동기부여를 잘 하는 리더가 되자라는 것이었다. 팀원이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팀원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자.
 
이상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언제나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말야구교실코치를 시작하던 첫날 첫 5분 사이에 느꼈던 이상과 연실의 괴리감이 리더를 맡고 나서도 유사하게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느새 팀원들은 본인이 업무를 완전히 매조지짓지 않아도 팀장이 알아서 마무리 하겠지. 플랫폼 장애가 발생해도 매뉴얼대로라면 또 지시한 대로라면 로테이션에 해당하는 멤버가 대응을 해야하지만 본인이 안하면 팀장이 대응을 하겠지 등의 생각을 갖게 된 것같아 보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어느 영화의 대사가 떠오르게 되는데 “호의가 계속 되면 당연한 권리인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분노하게 되고 배신을 당한 기분마저 든다. 힘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괴감이 들었다. 멤버들을 향한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하는 상황이 늘어가는 것이다.
 
한가지씩 작은 부분부터 다시 맞춰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멤버들이 문서화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로 보이나 회사 팀 업무를 위해서는 매뉴얼, 문서화가 분명 필요한 부분인데 어떻게 작성을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문서의 레이아웃을 잡고, 예제를 작성해서 제공하는 식으로. 그러나 또 언젠가는 이런 노력들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공허감, 허탈함, 배신감, 그리고 자책감과 우울감이 폭풍처럼 밀려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지난 노동절 라오메이 해변의 어느 바닷바위처럼 일희일비하지않고 그저 그 파도들을 담담하게 마주하는, 그런 리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에 이런저런 마음의 어려움들이 생기면서 다 정리하고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주일 설교 시간에 버티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그 바닷바위가 오버랩이 된다.
 
우직함. 정중동. 그것이 필요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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