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뜻밖의 기회 그리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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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뜻밖의 기회 그리고 결정

 
베트남 호치민시티에 위치한 회사와의 화상 인터뷰 후에 한동안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지냈다. 나는 외국으로 나가고 싶은 이상을 꿈꾸고 있는데 현실은 외국어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이라니.. 자책감과 무기력함이 큰 파도처럼 밀려와 덮친 것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두 아이가 태어나 가족은 4명이 되었고 회사는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내가 팀의 리더역할(파트장 내지는..) 을 해주길 바랐다. 나 또한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모 대기업의 비지니스 파트너(현실적으로는 을의 입장) 으로서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의 백앤드 개발자로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약 3개월이 되어갈 무렵, 전환점이 생기게 되었다. 프로젝트에서 개발자가 업무요건을 받아 개발을 하고 나면 테스트 환경에서 검증을 하고 대기업 매니저가 한번 더 검수를 하게 된다. 그 때 담당 개발자가 대기업 매니저에게 브리핑을 하고 이상 없으면 실제 서비스 환경에 반영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어느 날은 대기업 매니저의 검수하는 날 담당 매니저가 부재하게 되어 다른 서비스 담당의 노령의 매니저가 검수를 하게 되었는데 말도 안되는 이유를 늘어놓으며 승인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본인이 얘기하는 방법대로 수정을 해서 다음 날 다시 오라는 얘기를 했다. 명백한 갑질이었다. 울먹이는 후배 개발자도 있었고 그 회의실에 들어갔던 멤버는 모두 화가 나 있던 상태였다. 그 날 팀장님의 부모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나는 후배들에게 수정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조문하러 가자고 했다. 그 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고민과 더불어 더러운 갑질 문화가 있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일하기 싫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뜬금없는 채용정보와 희망없어보이던 경쟁률

이번에는 한국의 채용사이트부터 (이전에도 계속 검색해왔지만) 먼저 보기로 생각하고 앱을 실행했다. 아이들이 잠에서 깰까 싶어 새벽1시가 넘은 시간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앱을 켜고 벽에 등을 기대고 검색을 해보는데 평소에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대만의 개발자 채용 소식에 하나의 공고가 올라왔다. 막연하게 아내와 함께 대만생활에 대해 상상했던 대화들도 오버랩되고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희귀한 개발자 채용공고라 신기함과 기대를 가지고 창을 열었다. 웹 플랫폼 개발자의 채용공고였는데 경쟁률이 내 기억으로는 약 1:36 정도였다. 아.... 나에게 기회가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밑져야 본전, 시작이 있어야 끝도 있지라는 생각으로 지원 버튼을 클릭했다. 그리고 얼마동안은 기약없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갑질 당하는 을의 생활을 버텼다.
 
채용 인터뷰 요청과 합격 소식 그리고 고민

약 2주 정도 지났을까 메일이 한 통 날아왔고 채용인터뷰를 진행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원했던 회사는 대만 로컬회사였지만 매니저급 이상의 대부분이 한국인이었고 인터뷰를 진행할 분도 같은 한국인이어서 언어적인 면에서 어려움은 없었다. 일반적인 기술면접이 진행되고 몇 일 후 임원 면접을 겸한, 실질적인 조건에 대해 논의를 하는 2차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연봉이나 기본 복지가 한국보다는 다소 낮은 조건이었지만 현지 급여수준 등을 생각하면 많은 배려를 받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고민되었던 것은 생활비였는데 우리나라 기업에서 해외로 주재원신분으로 간다면 체제비 등의 생활 수당을 추가로 받을 수 있지만 현지 기업에 채용되는 조건이어서 체류비용이 개인 부담이었다. 어쨌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아내와 상의했다. 결혼 이후 비합리적인 상사의 정치, 내지는 갑을 관계의 상황에서 처한 부당함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 아내는 나의 상황에 안타까워했었고 나를 배려해주는 얘기들을 해주었다. 아내 역시 나를 만나기 전 대만에서 약 한달동안 생활해봤지만 생활로서 경험해보지는 못해 육아휴직기간동안 같이 대만에서 지낼 기대감이 있다고 앴다. 그러나 처녀떄와는 달리 아이둘을 데리고 외국에서 가장 힘든 육아 기간을 보낸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아내는 나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다. 고민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거절한다면 나중에 또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두려워하며 계속 회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를 했으니 응답에 대해 반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만의 회사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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